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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실을 ■■ 할 수 밖에 없었음을.

그리 생각하신다면야, 저 또한 즐겁게 받아들일게요.”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사람에게 맞춰주는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당황스러운 말을 회피하기 위함도 아니다. 진심으로 그리 하고 싶다고 속삭인다. 비록 닿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꼭 말로만 전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흔적과 나와의 기억을 곱씹어본다면 언젠가는 닿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당신이 나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참으로 오만한 인간이로다. 가장 끔찍한 형태로 상처를 남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미소를 짓는다. 항상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속여 한 곳만을 바라보았으나 기어이 당신에게는 거짓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한숨을 내쉰 적도 있었다. 간섭은 본디 잘 짜여 있는 무언가에 끼어드는, 이치에 맞지 않는 행위를 의미하고는 한다. 허나 나에게 닿는 당신의 능력은 간섭이 아니라 길이다. 내가 아마 살아서 복수를 이루어내었다면 그 후에 무엇을 했을까.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복수의 다음이 있었다면 아마 그것은 당신이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폐를 끼칠 수 없으니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 다음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해와 별도, 달도 자신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이런 승리를 그린 적은 없었는데. 다정한 이로 살아왔으나 내 시야에 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 번 신분을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내 할 일이 끝나면 또 한 번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 ■■■은 당신에게 닿았다. 그리하여 다시금 샛노란 색이 마음에서 싹을 텄다. 전망대 옆에 피어난 것이 민들레였을지, 해바라기였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오래전에 잊은 감정이다. 나의 분홍에 누군가가 담긴 것은 오랜만이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은 것이 일말의 새싹처럼 남아 입안을 가득 채운다.

 

“...저 같은걸요, 세상에나. 당신 못지않게 못된 사람이었는걸요. 빌런 치고는 온순하다고는 하나, 대외적인 이미지 유지가 어디 쉽던가요. 당신에게는 나의 유약한 모습을 눈에 씌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리하여 아담 브리앙, 오래전에 스러진 이름이 손끝에서 뻗어 나온다. 누군가를 담을 수 있던 순수한 이름이. 내가 내보일 수 있었던 최대의 진실. 들리지는 않아도 흔들리는 해바라기의 꽃잎으로 그 존재를 볼 수 있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의 앞에 섰다. 얇지만 굳건한 꽃대를 쥔 손을 감싸보았다. 당신에게는 그저 찬바람이 들었다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발뒤꿈치를 들고 고개를 슬쩍 들었다. 분명 이정도면 닿는 차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나긋한 목소리로 살아있는 이의 숨을 앗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