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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는다면,

망자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닿을까요?”

 

산뜻한 녹음을 담은 머리칼은 더 이상 흔들릴 일이 없었다. 그저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따라 미묘하게 경직되어있었다. 선홍빛이 사라진 분홍은 한 곳에 꽂혀있었다. 가식으로 인한 부드러움이 아니라 본연의 연한 빛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장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푹신한 의자와 매치되는 쿠션, 이곳저곳에 놓인 화분들과 어우러지는 연하고 수수한 벽지, 포근한 카펫이 깔린 바닥과 손수 장식한 벽 까지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해바라기가 떠나간 자리에 검은 장미 한 송이가 향을 흩뿌렸다. 아침 햇살에 흔들리는 식물들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곳과 어우러지는 이. 가볍게 꺼낸 약속을 지켜주며 이곳까지 다다른 것에 없어야 할 감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세상을 불신하지는 않았으나 신용하지도 않았다. 당신 또한 나의 유일이다. 유일하게 신용한다 말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나를 등진다 할지라도 그리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신뢰가 모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렇기에, 창가로 드리워진 얇은 커튼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작게 중얼거려보았다.

 

“어렵네요, 이 곳에는 ■■이 없지만 ■■이 있으니까요.”